사실상 보여주기식 징계 심판에 진짜 엄중해져야 할 KFA
사실상 보여주기식 징계 심판에 진짜 엄중해져야 할 KFA
대한축구협회(KFA)가 지난 전북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전 심판진 6명에 대해 잔여 시즌 배정 정지 조치를 내렸다.
이른바 교체 해프닝에 대한 책임을 우선 심판들에게 물은 것이다.
KFA는 이를 두고 ‘엄중한 행정조치’라고 자평했다.
올시즌 K리그가 겨우 세 라운드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돌아보면, 사실상 보여주기식 징계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KFA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 등을 통해 전북-포항전 경기를 진행했던 주심과 부심 2명, 대기심,
VAR 심판 2명 등 심판 6명 전원에 대한 이같은 행정조치 처분을 발표했다.
책임이 더 큰 주심과 대기심에 대해서는 내년 한 단계 강등시키는 사안을 안건으로 회부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달 28일 두 팀의 K리그 맞대결에서 나온 교체 해프닝 촌극에 대한 징계다.
상황은 이랬다. 김용환(포항)이 부상으로 필드 밖에서 치료를 받던 상황,
포항은 치료를 받던 김용환과 무관하게 김인성을 빼고 신광훈을 투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선수교체표를 제출했다.
KFA에 따르면 심판진은 김인성이 아닌 치료를 받고 있던 김용환이 아웃되는 것으로 인지하고,
김인성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신광훈이 그라운드에 투입될 수 있도록 했다.
나간 선수는 없고 새로운 선수만 한 명 더 투입됐으니, 공식적으로 포항의 출전 선수는 12명이 됐다.
심판진이 이를 인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4분이 훌쩍 넘은 뒤였다.
그제야 심판진은 당초 교체 아웃 대상이던 김인성을 내보냈다.
결국 경기 후 큰 논란이 됐다.
전북 구단도 프로축구연맹에 경기 규정을 근거로 포항의 몰수패와 김인성·신광훈에 대한 사후 징계에 대해 이의제기에 나섰다.
연맹 차원의 해당 경기 처분이 나오기도 전 KFA가 먼저 심판들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물었다. KFA는 K리그를 포함한 국내 모든 심판들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그간 KFA가 심판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불통’에 가까웠던 터라, 심판진에 대한 징계를 먼저 발표한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사실 KFA는 지난 2020년만 하더라도 “투명한 공개를 원칙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심판평가소위원회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K리그 매 라운드 주요 판정들의 정심·오심 여부를 직접 설명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결정적인 오심이 나오더라도 KFA 심판위원회 차원에서도 이를 오심으로 인정하는지,
심각한 오심이라면 해당 심판은 그에 따른 징계를 받았는지 등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았다.
KFA의 이번 발표 자체가 의외였던 이유였다.
뜬금없이 ‘엄중한 행정조치’를 운운하며 징계를 먼저 나서서 발표한 것도 의아하지만,
더 큰 문제는 과연 잔여 시즌 배정 정지가 KFA가 설명한 대로 ‘엄중한’ 조치였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K리그는 이제 팀당 세 경기씩밖에 남지 않은 시즌 막바지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표현들로 포장됐을 뿐 실질적인 징계는 세 경기에 불과한 셈이다.
그나마 주심·대기심에 대해선 내년 리그 한 단계 강등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실제 이뤄질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까지 심판들에 대한 징계 소식을 알린 것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실상마저 ‘보여주기식’에 그친 징계라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간 심판들을 감쌌던 KFA의 행보를 돌아보면 팬들의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지난 4월 강원FC-FC서울전에서 석연찮은 휘슬로 서울의 극장 동점골을 날려버린 심판은 불과 한 달도 채 안 돼 ‘슬그머니’ 복귀했다.
당시 서울은 억울하게 승점 1을 놓쳤는데, 공교롭게도 시간이 흘러 서울의 파이널 A·B 운명을 가른 것 역시 승점 1이었다.
울산 현대-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선 상대를 주먹으로 가격한 것을 보고도 외면한 심판 판정에 대해
‘가격보다는 밀치는 행위였다’는 황당한 논리로 심판을 감싸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KFA 스스로 자랑했던 심판평가소위 결과 공개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 역시 결국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게 축구계 공통된 시선이다.
이번 교체 해프닝에 대한 징계 역시 실상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올 시즌 심판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게 반복되고 있는 건, 일부 심판들의 자질뿐만 아니라
KFA 역시 심판들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조건 감싸거나 보여주기식 징계에 그칠 게 아니라, 대중이 인정할 정도의 ‘엄중한’ 징계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심판 판정 하나가 경기 결과, 나아가 한 팀의 시즌 성패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심판도, KFA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