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킥오프 1시간반 전 경기 연기 사태 전말
초유의 킥오프 1시간반 전 경기 연기 사태 전말
“축구를 오래 하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네요. 허허”
9일 오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김기동 포항 감독은 헛웃음을 지었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았다.
현장은 ‘잔디도 촉촉이 젖고 날씨도 선선해 경기를 하기엔 최적’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공문 한 장에 제주와 2023년 하나원큐 FA컵 준결승 경기가 연기됐다.
김 감독은 경기 직전에 경기가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에 혀를 찼다.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오후 7시30분 킥오프를 3시간 앞둔 오후 4시까지 경기는 정상적으로 열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남기일 제주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기가 열리는 줄 알고 팀 미팅을 하던’ 오후 6시 10분~20분쯤 취소 통보를 받았다.
실제로 양팀 선수, 코치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경기 한 시간여를 앞두고 경기장에 나와 잔디 상태 등 경기장을 살폈다.
취재진도 평소와 같이 경기 취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기됐습니다.” 제주 홍보팀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경기 연기를 공지한 건 오후 6시20분쯤이었다.
오후 6시40분쯤엔 전광판에 경기 연기를 알리는 문구가 등장했다. 선수단, 팬들 할것없이 황당함을 금하지 못했다.
시설물이 훼손될 정도의 ‘태풍 날씨’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한 축구계 관계자는 “축구 하루 이틀 하나.
이보다 더한 환경에서도 경기가 열리고는 했다.
경기를 일단 시작하고 비바람이 거세지거나, 안전에 우려가 갈만한 일이 생기면 그때 중단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100여명의 포항팬들은 일제히 야유를 쏟아냈다.
일부팬들은 늦은 밤까지 경기장에 남아 제주 구단측에 항의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 결과, 경기의 ‘정상 개최’를 ‘경기 연기’로 바꾼 건 제주 구단이 아닌 공문 한 장이었다.
오후 6시쯤, 대한축구협회와 양 구단에 제주특별자치도발 공문 한 장이 전달됐다.
입수한 공문에는 ‘현재 제6호 태풍 카눈이 북상하여 제주도 전역에 태풍주의보가 발효중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선 최고 비상단계 3단계로 발령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재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총력 행정을 펼치고 있다.
경기 강행시 선수 및 관중의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또한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을 조장할 우려가 있으므로 경기 취소 및 연기를 요청한다.
적극 조치하여 주기 바란다’고 적혀있었다.
제주도는 서귀포로 이동하는 제주 시민들의 안전을 특히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이 공문을 전달받은 경기감독관과 대회본부측은 재논의 끝에 ‘경기 연기’라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을 접한 포항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포항은 원활한 경기 준비를 위해 경기 이틀 전인 7일에 입도한 상태였다.
태풍의 영향으로 경기 다음날인 10일 출도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대로 경기가 취소되면 꼬박 4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리는 셈이 된다.
하지만 협회는 ‘범정부 차원의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경기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할 뿐이었다.